잔잔한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에서 금방이라도 선원들이 나와 분주하게 움직일 것 같다. 선실부터 지붕 위 굴뚝까지 정교하게 구현된 이 배의 크기는 단 3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머리카락 위에 올려놓으면 마치 4차선 도로 위를 달리는 승용차처럼 보일 정도다.
지난해 12월 1일, 57년간 천문학자들의 눈이 돼 주었던 아레시보천문대가 부서졌다. 그보다 앞선 1월엔 16년간 활동해온 스피처우주망원경과의 신호가 끊겼다. 이들은 각기 활동한 영역과 기간은 다르지만 일생을 우주만 바라보다 잠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RIP(Rest in Peace)’보단 ‘RIS(Rest in Space)’가 어울리는 이유다. 초기 임무 기간을 훌쩍 넘어서 사라지는 순간에도 우주를 정조준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태양 대기의 가장 바깥 영역인 코로나는 밝기는 어두운 반면 온도는 표면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는 태양풍으로 불리는 플라스마를 빠른 속도로 태양계 전체에 방출해 지구에도 영향을 준다. 코로나의 높은 온도와 태양풍의 가속 메커니즘은 아직 규명되지 않은 과학 난제다.
최근 세상을 떠난 옛 가수들을 인공지능(AI) 기술로 재현하는 TV 프로그램이 방영돼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해 12월, 케이블 음악채널 엠넷은 ‘다시 한 번’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혼성 그룹 거북이의 리더였던 터틀맨과 가수 김현식의 목소리와 모습을 복원해 새로운 곡과 무대를 선보였다. 이미 세상을 떠난 가수들이 살아 돌아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목소리와 표정, 몸짓이 생생하게 구현됐다. 이 무대가 가능할 수 있었던 건 바로 AI의 음성합성 기술과 영상합성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피자를 어떻게 나누면 공평하게 먹을 수 있을까? 또는 더 많이 먹을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많은 수학자들이 연구했던 단골문제다. 대부분 사람들은 피자를 자를 때 나타나는 모든 선이 원의 중심을 지나가게끔 긋는다. 이때에는 내가 먹은 양이 개수에 비례한다. 하지만 만약 이 선들이 원의 중심을 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피자 조각마다 크기가 서로 다를 것이다. 물론 이때에는 내가 가장 많이 먹고 싶다면 무조건 크기가 큰 조각만 골라먹으면 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결국 누가 가장 많이 먹었는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식탐이 가득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연구한 괴짜 수학자들이 있었다.
서울의 서촌과 북촌, 전주의 한옥마을…. 우리나라의 전통 가옥인 한옥을 보존하고 또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곳은 주말마다 관광객으로 붐비고, 한옥으로 만든 숙박시설은 미리 예약해야 하루를 묵을 수 있다. 또 한옥을 빌려 실제로 거주하거나 직접 한옥을 짓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한옥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한옥이 어떤 구조로 돼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메주를 가지고 장을 만들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장을 만드는 날이면 할머니는 언제나 이른 새벽에 멀리 떨어져있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 메주를 삶으셨다. 이상했다. 집 안의 물독에 물이 들어있는데도 할머니가 왜 그 이른 아침에 새로 물을 길어오는 수고를 하시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이상하게 생각됐다.
경남 합천군 초계면과 적중면에는 약 7km 직경의 수수께끼의 분지가 있다. 여기서 분지란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안은 평평한 지역을 뜻한다. 분지는 보통 지각의 구조 운동이나 침식을 통해 생성되나 아주 극적인 원인으로도 형성될 수 있다. 바로 운석 충돌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적중-초계 분지는 운석 충돌로 생긴 것임을 확인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발견된 운석 충돌구다.
2015년 4월 10일, 당시 우정사업본부에서는 한국의 과학 시리즈, 첫 번째 묶음으로 한국을 빛낸 명예로운 과학기술인 우표를 발행했다. 우표에 실린 과학자는 이론물리학자 이휘소(1935~1977), 나비박사 석주명(1908~1950), 그리고 한만춘(1921~1984)이다. 오늘 소개할 한만춘 박사는 나머지 두 박사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우리나라의 전기공학을 개척하고 전력산업을 근대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수련의(인턴) 시절 정신과에 지원하기로 결심했을 때의 일이다. 부모님은 “평범한 과를 전공하지 왜 그런 특이한 과를 가려 하니?”란 반응을 보였다. 거부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들이 ‘비정상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까 봐 염려한 것이었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정신 질환에 대한 오해와 우려는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