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과학이야기 재미있고 다양한 과학이야기를 읽어보세요

[제2의 몸] 눈 - 빛나는 세상과 다시 조우하다
조회 177 2021.04.21 신고


19세기의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는 「자연신학 또는 자연현상에서 수립된 신의 존재와 속성에 대한 증거」(1802)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생물은 신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면서, 시계와 인간의 눈을 예시로 들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길을 가다가 시계 하나를 주웠다고 가정해보자. 여러 개의 태엽 장치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리며 시침과 분침이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며, 세련된 장식까지 더해진 ‘명품’ 시계를 말이다. 이런 정교한 시계라면, 분명 뛰어난 기술을 가진 일류 시계공의 정성과 노력을 통해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이렇게 시계처럼 정밀하고 복잡한 물체가 결코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시계보다 백만 배는 더 복잡하고 정밀한 인간의 눈이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며, 그렇기에 생명은 저절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절대적 존재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이 더 이치에 합당하다.*


주인 없이 버려진 시계. 하지만 뛰어난 실력과 손재주를 가진 시계공이 이를 만들었음에 틀림없다. 
바로 ‘페일리의 논증’으로 알려진 시계공 가설입니다. 


* 물론 이 이론에 대해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며, 진화론의 선두 주자 리처드 도킨스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저술했다는 책 [눈먼 시계공]을 통해 페일리의 논증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눈의 발생 


모든 생명은 진화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을 의심 없이 인정하지만, 페일리의 시계공 가설에서 예로 든 시계와 눈의 비유는 매우 직관적이고 그럴듯한데요. 사람의 눈은 그만큼 복잡하고 정교하여, 각막-홍채-수정체-안구 내 유리체-망막-시신경-시각피질로 이어지는 시각 신호 전달 시스템 중 단 한 가지만이라도 기능하지 못하거나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시각은 형성되지 못합니다. 심지어 직접적인 시각 경로뿐만 아니라, 눈을 둘러싼 주변 조직-안구 근육, 눈물샘, 속눈썹, 눈꺼풀, 누관, 혈관 등-들의 적절한 발달과 배치가 없다면 온전한 시각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각을 둘러싼 이 모든 조직은 발생 과정에서 처음부터 연결되어 발생하는 것도 아니어서, 따로 발생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들어맞아 눈의 구조를 형성한답니다.


안구의 해부학적 구조. 이를 구성하는 모든 기관들이 정확히 자기 자리에 맞게 배열되고 연결되어 있어야 비로소 시각이 형성된다. 이 중 하나라도 결손이 되거나 연결이 끊긴다면, 우리는 앞을 볼 수 없다. 

 

인간의 태아는 수정 후 4주 경이면 신경관이 발달하는데 이 신경관의 한쪽 끝, 장차 머리가 될 부분의 일부가 부풀어 올라 주머니 모양의 눈 소포(optic vesicle)를 형성합니다. 이 주머니의 한쪽이 안쪽으로 접혀 들어가면서 U자형의 구조인 눈 술잔(optic cup)을 만들고, 이 눈 술잔의 안쪽 벽은 장차 망막으로, 바깥쪽은 공막으로, 입구 가장자리는 홍채로 분화합니다. 술잔의 입구 쪽에는 따로 발생하여 만들어진 수정체 원판이 자리 잡아 꼭 맞게 맞물리면서 동그란 안구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기본 구조를 갖춘 눈은 수정 5주경부터는 망막 색소를, 7주 경부터는 시신경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며 점차 눈의 형체를 갖추어나가는 것입니다.







시각, 세상을 인식하는 채널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 옛말처럼 사람의 감각 인식 방식 중 눈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인간의 경우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총 다섯 가지 감각 중 시각에 의존하는 비율이 80~85%에 이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시각을 잃는 경우 외부를 인식하는 채널의 상당 부분이 닫힌다는 뜻이 되기도 하지요. 2019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시각장애인은 약 25만 명이며, 이 중 당뇨망막병증, 녹내장 등의 질환 및 기타 사고 등으로 인해 실명하는 후천적 시각 장애가 전체의 80~9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는 경우, 삶의 전반에 다시 적응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며, 한 번 잃어버린 시각 능력으로 남은 삶의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점에서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제2의 눈을 만드는 사람들

인공각막을 이식한 환자의 눈. 인공각막은 대기 시간이 적어 각막 손상으로 인한 실명의 치료방법으로 쓰이고 있다. by Mariagessa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빛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시각을 복원하려는 연구는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가장 획기적인 성과를 보여준 분야는 바로 각막 이식인공 수정체의 개발입니다.



안구의 내부로 빛이 유입되는 최초의 관문인 각막은 외상이나 감염 등으로 인해 쉽게 손상될 수 있고, 손상된 각막은 혼탁하게 흐려지며 실명을 유발합니다. 각막 손상으로 인한 실명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타인의 각막을 이식하는 것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시작되었습니다. 1905년 최초의 각막 이식이 시도되어 환자의 시력을 개선하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렇게 시기적으로 이르게 성공이 가능했던 것은, 각막에는 혈관이 분포되어 있지 않아 면역 거부반응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중반 각막 기증자와 이식자를 연결해주는 각막 은행이 설립되면서, 이식은 각막 손상으로 인한 실명을 치료하는 기본 치료법이 되었습니다. 다만 모든 장기이식과 마찬가지로, 각막 역시 기증자와 수요자의 불균형으로 인한 대기 시간이 문제였고, 이로 인해 인공 각막의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현재 대표적인 인공 각막은 1960년대 중반 돌먼(Dohman)에 의해 개발된 PPMA 재질의 보스톤 I형 인공 각막으로, 꾸준한 개선을 거쳐 안정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상태입니다.



백내장은 빛을 모으는 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가 혼탁해지는 질환으로, 고대로부터 인류에게 있어 가장 흔한 실명의 원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백내장으로 인해 수정체가 혼탁해지면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지만, 이 수정체를 제거하면 빛이 투과될 수 있어 일부나마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정체는 발생학적으로 안구와 독립적으로 발달하는 조직으로 따로 안구에 손상을 주지 않고 적출이 가능하기에, 혼탁해진 수정체를 제거하는 시술은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치료법이었습니다. 수련 연작 시리즈로 유명한 화가 모네 역시도 백내장으로 고통받다가 수정체를 제거한 뒤 다시 붓을 잡을 수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수정체를 제거하면 심한 원시가 발생하고, 수정체가 걸러주던 청색광이 그대로 투과하여 시야가 푸르게 보이는 특성이 있습니다. 모네의 그림이 말년으로 갈수록 푸른 색조가 강해지는 것은 그의 눈에 일어난 변화 때문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인공 수정체는 20세기 중반 이식 시 거부반응이 적은 PPMA 재질로 개발 및 도입되었습니다. 이후, 개량과 개선을 거듭해 현재는 시력 교정용 수정체, 색 보정 기능이 포함된 수정체, 다초점 렌즈 기능이 든 수정체 등 다양한 인공 수정체가 개발되었습니다. 인공 수정체를 삽입하는 백내장 수술은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받는 수술 중 하나로, 2019년 한 해 동안 이루어진 200만 건의 수술 중 무려 45만 9천 건을 차지할 정도입니다.




각막과 수정체 치료의 발전과 달리, 망막 손상으로 인한 실명은 치료나 보철 기구의 개발이 지지부진한 상태였습다. 망막에 존재하는 세포들은 여타의 중추신경계를 구성하는 세포들과 마찬가지로 한 번 파괴되면 재생이 불가하여 망막 손상은 완치가 어려운 질환으로 여겨졌습니다. 또 망막은 시각피질과 연결되어 있기에, 망막의 손상이 시각피질의 인식 능력에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었고요. 따라서 인공 망막의 개발을 위해서는 먼저 망막만 복구한다면 눈과 뇌의 연결이 다시금 복구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1967년 영국의 브린들리(Brindley)와 르윈(Lewin)은 무선 시각피질 자극기를 이용해 망막 손상 환자들의 시각피질에 전기적 자극을 주어, 이들이 눈 안에서 번쩍이는 듯함 섬광을 느끼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이 소식에 학자들은 망막에 존재하는 시세포의 역할에 주목했는데요. 시세포의 기능을 단순하게 정리하면, 안구 내부로 유입된 물리적인 에너지인 빛을 받아 각각의 정보에 대응해 이를 전기적 신호로 변환시켜 뇌의 시각피질에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학자들은 빛을 받아들이는 화상 획득 장치, 빛이 가진 정보를 파악해서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 주는 신호 전환 장치, 신호를 시신경에 전달하는 시신경 자극 및 전송 장치,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전원공급 장치를 연결해 생물학적 눈을 대신할 ‘기계 눈’ 개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2013년 최초로 FDA의 승인을 받은 망막 보철 장치 아르구스 II(Argus II)에 이어, 최근에는 이보다 업그레이드 된 시각 피질 보철 장치인 오리온 비주얼 코티컬 보철 시스템(Orion Visual Cortical Prosthesis System)이 임상시험 중인데요. 오리온은 선글라스 형태로 만들어진 카메라로 시각 정보를 수집한 뒤, 변환장치를 통해 이를 전기 신호로 바꾸고 시각 피질에 미리 삽입해둔 임플란트 장치로 전기 신호를 무선으로 전달합니다. 이렇게 변환된 시각 신호는 우리가 지금 두 눈으로 보고 있는 풍광과는 사뭇 다른 형태이기에 착용자는 이에 적응하기 위해 몇 달간의 조정 기간을 거쳐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장애물의 인식 및 사물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향후 뇌에 심어두는 임플란트에 배열된 전극의 수를 늘리면 더 섬세한 시야 구분이 가능해지고, 두 대의 카메라가 찍은 정보를 합쳐 원근감도 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져 인공 시각의 실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밝을 세상을 위하여”




아직 모든 시각 질환을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는 제2의 눈의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성공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상태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이 밝은 빛과 활기찬 움직임,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언제나 볼 수 있는 날이 조만간 오기를 바랍니다. 







참고 문헌

· 『눈 먼 시계공』, 리처드 도킨스 지음/이용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4
· 『하리하라의 눈 이야기』, 이은희 지음, 한겨레출판, 2016
· 「보스톤 1형 인공각막이식술의 2예」, 나윤수 외, 대한안과학회지 제46권 12호(2005)
· [2019년 장애인 실태조사],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 [2019년 건강보험공탄 통계 연보], 등록번호 11-B50928-000001-10, 건강보험심사평가원(2020)
· 각막이식 https://en.wikipedia.org/wiki/Corneal_transplantation
· 시각보철전문 회사 세컨드사이트 https://secondsight.com/discover-argus/


0 댓글0
추천콘텐츠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