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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몸] 다리 - 다시 걷다
조회 149 2021.05.12 신고

Amputee's dancing dream (출처: TEDx Talks 유튜브 채널)



한 남성이 무대 위에서 멋진 춤을 선보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한 여성이 등장해 듀엣 댄스를 선보입니다. 여성은 흥겨운 음악에 맞춰 가볍고 경쾌하게 움직이는 것은 물론, 함께 춤추는 이와 보조를 맞추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멋진 두 댄서의 공연으로 인해 흥겨워진 마음은, 여성 댄서인 아드리안의 두 다리 중 한쪽이 의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놀라움을 넘어 경탄으로 바뀝니다. 이 영상의 제목으로 붙여진 “Amputee’s dancing dream”처럼, 테러 사건의 희생자로 다리를 잃었던 댄서에게 꿈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죠.

 




이족보행, 인간의 아이덴티티


인간은 생후 1년 전후로 첫걸음마를 뗍니다. 처음에 아장아장하던 걸음걸이는 성장함에 따라 점차 자연스러워지고, 사람들은 곧 걷기의 놀라움을 잊어버리죠.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은 단지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인간이 지구상의 생물학적 존재 중 유일하게 이성을 가진 존재로 진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족보행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평지에 두 발로 서면서,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손을 이동의 책무에서 면제시켰습니다. 손을 통해 세상을 조작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되었고, 이동의 부담은 오롯이 다리가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에서 실시한 메타분석연구에 따르면, 적절한 수준의 걷기는 수명 연장에 효과가 있습니다. 연구자들의 조사 결과, 일주일에 75분 이상 걷는 이들의 기대 수명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1.8년 길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걷는 시간에 비례하며 주당 150~299분을 걷는 이들의 경우 3.4년, 주당 450분 이상 걷는 경우 4.5년의 수명 연장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걷기 예찬』의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이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이 우리에게 돌아온다”라며 극찬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걸을 수 있다는 건 인간의 생에서 매우 중요한 기본 요소이지요.


하지만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통계포털(www.kosis.kr)의 2019년 장애유형별 통계에 따르면, 지체 장애를 지닌 78 만여 명의 사람 중 45.3%는 다리의 절단 혹은 마비로 인한 하지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구적인 장애로 걸을 수 없거나 혹은 걷기에 상당한 어려움을 지니는 이들이 수십만에 해당한다는 것이죠. 목발, 휠체어, 전동 휠체어 등 다양한 이동 보조 장치가 개발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걷기’라는 행위를 완전히 대치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동화 속 인어공주는 마녀가 준 물약을 먹고 다리를 얻습니다. 그런데 현실의 과학자들은 새로운 다리를 자라나게 하는 실마리를 마녀가 아닌 돼지에게서 얻었습니다. 2014년, 미국 피츠버그 대학 재생의학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사고나 부상으로 인해 다리 근육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제대로 걸을 수 없는 환자들에게 돼지의 방광에서 추출한 ECM(extracellular matrix, 세포외기질)을 투여하여, 5명의 환자 중 3명에게서 근육세포가 눈에 띄게 재생됨을 보고한 바 있습니다.




다리는 몸을 지지하는 기관이므로, 인체를 구성하는 근육의 60% 이상이 다리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근육세포의 재생은 근육의 비중이 매우 높은 다리의 기능 복원에 주요한 디딤돌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아이디어의 시작은 도마뱀처럼 꼬리나 심지어 다리 일부가 잘려도 재생이 가능한 척추동물의 모습에서 기인했습니다. 대개 파충류나 양서류의 경우, 신체의 재생능력이 인간이나 포유류 대비 월등히 뛰어납니다. 이들의 유전체를 조사한 결과, 포유류에게서는 세포 재생을 방해하는 유전자와 같은 기능을 하는 유전자가 이들에게는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세포 재생을 더 쉽게 할 수 있고, 심지어 다리까지 재생이 가능한 것이죠. 그럼 인간에게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동물 실험에서, 포유류에서 세포 재생능력의 확대는 자칫 세포 주기를 교란시켜 암세포를 발생시킬 위험성이 높다는 사실이 제기되었습니다. 아무리 새로운 다리를 만든다고 해도 암이 생기면 결국 다시 제거해야 하니 이런 방식의 접근은 상당한 위험이 따릅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기계로 다리를 대치하다


1982년 1월의 어느 날, 17세의 소년 휴 허(Hugh Herr)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경험을 하게 됩니다. 소년 등반가로서의 경력을 착실히 쌓아가던 소년에게 1월의 추위 정도는 큰 장애물은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산에 올랐던 소년은 화이트 아웃(눈이나 모래 따위로 인해 시야가 심하게 제한되는 기상 악화 현상)에 갇혔고, 3일 만에 겨우 구조되었을 때는 이미 동상으로 무릎 아래의 다리를 잃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사라진 다리도 허에게서 등반에 대한 욕망을 빼앗아가진 못했습니다. 곧 허는 의족을 달고 암벽 등반을 나섰고,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원래 다리에 미치지 못하는 의족의 불편함을 하나하나 개선하기 시작합니다. 다리와 의족이 만나는 부분이 쓸리지 않도록 완충제를 채우고, 좁은 바위틈에 걸치기 쉽게 의족의 끝을 좁고 뾰족하게 변형시키거나 스파이크를 달고, 다리의 길이도 조절되게 만드는 등 암벽타기에 최적화된 다리를 만들어내기에 이릅니다.



Hugh Herr by Steve Jurvetson  
CC BY 2.0 Wikimedia Commons 

 

나아가 허는 등반용 다리가 아닌 인간의 다리 자체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다리는 지지대 역할을 하는 뼈,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근육, 또 에너지를 저장하고 방향을 바꾸어주는 힘줄, 그리고 이들을 단단히 엮는 인대가 발목 관절에서 모여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며 움직입니다. 그는 모션캡쳐를 통해 사람이 걸을 때 다리에서 일어나는 힘의 생산-발산-재분배 패턴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고, 이를 프로그래밍했습니다. 또 사람의 다리 구조를 본떠 알루미늄 지지대와 모터, 배터리, 스프링 등으로 만든 인조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허의 다리는 실제 가하는 힘과 움직임에 따라서 반응합니다. 그는 이 다리로 걷고, 뛰고, 계단을 오르고, 자전거를 타는 등 원래의 다리가 하던 거의 모든 일을 다시 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심지어 앞서 아드리안에게 달아주었던 다리는 춤도 출 수 있습니다. 유연성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만 같은 기계 다리를 달고도 가볍고 경쾌하게 춤을 추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허와 아드리안이 보여줬습니다. 수백 만년의 진화 과정을 통해 가장 최적으로 다듬어진 자연의 결과물을 훌륭하게 벤치마킹하는데 성공한 셈이죠. 


이제 허와 그 동료들은 원래 신체가 지녔던 생물학적인 기능을 더 잘 구현할 수 있는 인조다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동력원의 소형화인데요. 초기 의족은 배터리 무게만 6kg에 달해 여긴 무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의 발이 지면을 밟을 때 생기는 반탄력을 재사용해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사용하여 걷는 것에 착안해, 바닥을 밀 때 나오는 힘을 (힘줄 역할을 하는) 스프링의 탄성 에너지로 전환하여 에너지를 재사용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좀 더 가벼운 의족을 구현할 수 있게 됩니다.


세계 각지의 연구자들은 지금도 더 오래, 더 가볍게, 더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다리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리 안쪽에서 다리를 대치하거나, 다리 밖에서 외골격 수트를 통해 보조하는 방식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 Walk Your Way to a Longer Life, Study Says, Steven Reinberg, Healthday 2012년 11월 6일자

· 『걷기 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2002

· Amputee’s dancing dream, https://tedxbeaconstreet.com/videos/amputees-dancing-dream/

· 「An acellular biologic scaffold promotes skeletal muscle formation in mice and humans with volumetric muscle loss」, Brian Sicari etc. Sci Transl Med.  2014 Apr 30;6(234)

· 『신체 설계자』, 애덤 피오리 지음/유강은 옮김, 미지북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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