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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없는 유인원 - 인류가 털 대신에 얻은 것은?
조회 32 2021.09.15 신고


인류를 부르는 여러 별칭들 중에 잘 알려진 것 하나가 ‘털 없는 유인원’입니다. 인류는 얼핏 보기에 두피와 눈썹 등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털이 거의 없어서 붙은 별명이지요. 하지만 사실 이 표현은 생물학적으로 맞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의 표피에서 털이 존재하지 않는 부분은 손바닥과 발바닥, 입술뿐이며, 이 곳에 털이 없는 것은 다른 영장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아기는 두피에 10만개의 모낭을 포함해 피부 전체에 약 300~500만개의 모낭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는 유인원 친척인 침팬지나 오랑우탄 등이 지닌 모낭의 수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벌거벗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모낭이 적어서가 아니라 그 모낭에서 만드는 털이 보잘 것 없어서입니다. 모낭도 있고 털도 있지만, 그 털이 매우 가늘고 길이도 짧아서 얼핏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왜 털이 부족한 걸까요? 더운 지방에 살면서도 몸집이 아주 커서 열 발산이 어려운 코끼리나 온도 변화가 덜한 땅속에 굴을 파고 여럿이 뭉쳐서 체온을 나누며 사는 벌거숭이 두더지쥐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포유류는 길고 촘촘한 털로 피부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코끼리처럼 크지도, 벌거숭이 두더지쥐처럼 뭉쳐 살지도 않는데 왜 털이 빈약한 걸까요? 이에 대해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바로 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류는 뇌를 얻기 위해 털을 포기했다는 것이죠. 




털, 최초의 보호막



뇌와 털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살피기 전에 먼저 털의 존재 이유에 대해 알아볼까요? 생물은 세포로 구성된 존재이며, 세포란 세포막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단절된 유기체입니다. 단세포 생물체들은 각자가 외부에 노출되는 정도가 같지만, 이들이 다세포 생물체로 진화하게 되면서 각각의 세포들은 자신이 위치한 자리와 기능에 따라 외부와 맞닥뜨리는 비율이 달라지게 됩니다. 다세포 생물체의 가장 바깥쪽에 자리잡은 세포들은 외부 환경에 오롯이 노출되지만, 안쪽 세포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내부 환경을 누릴 수 있으니까요. 이런 이유로 생물체들은 몸의 표면에 일종의 방어벽 역할을 하는 든든한 피부세포들을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진화되었습니다만, 피부 역시도 상처입기 쉬운 유기체의 일종이니 이왕이면 피부 세포 바깥에 이들을 보완하고 보호하는 조직이 있다면 아무래도 좀더 안전할 겁니다. 달팽이가 미끈미끈하고 끈끈한 점액을 분비해 피부를 매끄럽게 보호하고, 딱정벌레가 딱딱한 키틴질의 껍데기로 몸을 무장하고, 물고기나 파충류가 얇지만 단단한 조직인 비늘을 만들어 피부를 겹겹이 덮어씌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조상인 포유류가 선택한 전략은 바로 이었습니다. 튼튼하고 질긴 단백질 섬유들을 꼬아서 피부 세포에서 바깥쪽으로 길게 뻗어내어 피부와 외부 환경 사이에서 일차적 완충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죠.



 



털, 열을 차단하거나 가두다



털은 피부가 직접 드러나는 것을 막아 피부가 닿아서 쓸리거나 벗겨지는 것을 막고, 약간의 탄성이 있어 외부의 물리적 충격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기도 합니다. 또한 감각 기능을 확장해 외부 자극이 피부에 직접 닿기 전에 감지하는 역할도 하지요. (예를 들어 고양이의 수염은 털인 동시에 예민한 감각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털의 가장 큰 역할은 단열 효과입니다. 털은 외부와 내부의 열을 완벽하게 갈라놓는 효과 좋은 단열 장치입니다. 털을 구성하는 케라틴 단백질은 열전도성이 매우 낮은 물질로, 금속물질인 납과 비교하면 열전도율이 8만분의 1에 불과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동물의 털은 가늘기는 하지만 매우 길고 촘촘하여 구조상 사이사이에 공기층을 품고 있는데, 공기층의 열전도율은 케라틴 단백질보다도 더 낮기 때문에 털을 경계로 피부와 외부 대기는 거의 완벽하게 차단됩니다. 단백질로 된 촘촘하고 빽빽한 털과 그 사이사이에 살포시 자리잡은 공기층은 포유류의 체온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할 뿐 아니라, 외부의 열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도 합니다. 북극곰이 북극의 칼바람 속에서 얼음 위를 뒹굴면서도 얼어 죽지 않고, 낙타가 뜨거운 사막을 횡단하면서도 피부에 일광화상을 입지 않는 것을 보면 털가죽의 단열 효과는 정말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털의 이런 단열 효과는 포유류가 주변 환경에 상관없이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는데 분명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해가 떨어지고 기온이 낮아지면 느려지는 파충류와는 달리 포유류들은 밤에도 재빠르게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장점은 종종 그 자체로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털의 문제는 단열 효과가 뛰어나도 너무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사바나에 사는 육식동물 중에는 치타를 비롯해 단거리 스프린터들이 많습니다. 치타는 순간 속도가 110km에 달해 자동차만큼이나 빠르지만, 오래 달리지는 못합니다. 이 때 ‘오래’의 기준은 겨우 1분 남짓입니다. 그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열을 받아서입니다. 치타가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태워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이 털에 갇혀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털에 갇힌 체열은 체온을 높이고, 단백질로 구성된 몸은 열에 취약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사냥 초반에 먹잇감을 잡지 못하면 곧 포기하고 서늘한 나무 그늘을 찾아 들어갑니다. 몸이 스스로의 체온으로 익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지요.




털을 포기하고 뇌를 얻다



인류의 달리기 능력은 최고 속도가 느리다는 점 때문에 과소평가된 부분이 있지만, 인류도 상당히 잘 달리는 동물 중 하나입니다. 발달된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 용수철처럼 탄성 있는 아킬레스건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다리는 에너지를 최소로 하여 움직일 수 있도록 디자인된 진화 공학의 놀라운 산물입니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들 중 상당수가 걷기 운동을 많이 해도 살이 별로 빠지지 않는다고 투덜대곤 하는데, 그건 인간의 다리가 걷기에 최적화되고 효율적이어서 에너지 소모가 적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다리는 폭발적인 스피드를 낼 수는 없지만 누구보다 오래 걸을 수 있습니다. 늘 책상 앞에만 앉아 있고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져 있는 현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지금도 전통적 수렵채집인들은 매일 평균 9~15km를 이동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달리기를 오래하면 체온이 오릅니다. 신체 부위 중에서 특히 뇌는 열에 가장 민감한 기관입니다. 흔히 ‘열사병’이라 불리는 온열 질환은, 여름철 땡볕이나 밀폐된 더운 곳에서 운동이나 육체 노동을 하는 경우 올라간 체온을 식히지 못해 발생하는 증상으로 여름철 사고사의 큰 원인입니다. 열을 제대로 식히지 못해 체온이 40℃ 이상이 되면,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기에 열사병 증상(어지럼증, 피로감, 두통, 시야 흐림, 오심과 구토 등)이 나타나는데, 이 때 즉시 움직임을 멈추고 체온을 낮추지 않으면 약 80%가 사망하며, 다행히 살아남은 이들 중에서도 20%에게는 영구적 장기 손상이 후유증으로 남을 정도로 열사병은 무서운 질환입니다. 그러니 인류가 달리기를 오래 하기 위해서는 단열 능력이 좋은 털은 방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털을 점점 더 짧고 가늘게 하여 단열 효과를 없애는 동시에, 피부에 땀샘을 대량으로 분포시켜 냉각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적 압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체온을 식힐 수 있었기에 열에 민감한 뇌를 더 크게 발달시킬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땀 흘리기 능력은 포유류 중 단연 최상급에 속합니다. 땀은 기화열을 통해 피부에서 열을 빼앗아 체온을 낮추는 역할을 하거든요. 인간은 털을 벗고 땀을 흘리며 뇌를 발달시킨 존재입니다. 그러니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분류한다면, 인간은 ‘털 없는’ 유인원이라기보다는 ‘땀 흘리는’ 유인원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겠습니다.






머리카락은 노폐물 저장고?


이렇게 체모를 지속적으로 줄여온 인간이지만, 여전히 체모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길고 풍성하게 자라난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머리카락이죠. 인류에게 털은 보온이나 보호, 감각기관으로서의 기능도 거의 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일부나마 털을 계속 발달시킨 이유는 무엇일까요? 


머리카락을 비롯한 모든 털은 한번 돋아나서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교체됩니다. 털을 만들어내는 모낭은 성장기-퇴행기-휴지기-탈락기를 반복합니다. 성장기에는 모낭이 털을 구성하는 단백질들을 꾸준히 생산해 밀어내기에 털이 점점 길어집니다. 퇴행기와 휴지기에는 더 이상 털이 길어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다가 탈락기가 되면 모낭이 쭈그러들고 털이 분리되어 피부에서 떨어집니다. 이 때 모낭이 쭈그러들었다고 해서 죽은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낭은 다시 활동을 시작해 주기를 반복합니다.  



보통 동물의 털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랐다가 빠지는 일종의 계절성 주기를 갖습니다. 흔히 ‘털갈이’라고 부르는 현상이죠. 멧토끼는 겨울이 다가오면 갈색 털이 빠져 흰털이 나고, 노루의 경우 여름털은 짧고 거칠지만 가을 털갈이 이후 겨울털은 긴 털 아래 곱슬곱슬한 솜털이 나 있습니다. 이렇게 동물들은 털갈이를 통해 계절의 변화에 대응합니다. 그래서 동물들의 털은 대개 모낭의 성장 주기가 같습니다. 기후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같이 자라고, 같이 멈추고, 같이 빠져야 하거든요. 



그런데 사람은 좀 다릅니다. 사람의 머리카락에는 약 10만 개의 모낭이 존재하고, 모낭의 수명은 2~6년 정도이며 만들어내는 머리카락의 양도 하루에 0.3mm 내외로 비슷하지만, 개별 모낭들의 성장-휴지-탈락 주기는 제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은 털갈이를 하는 동물처럼 특정 시기에 한꺼번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다시 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조금씩(하루에 50~100가닥 사이) 교체됩니다. 이에 대해 가장 지지를 많이 받는 가설은 머리카락이 일종의 ‘노폐물 저장고’로 기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장기의 모낭은 부지런히 단백질들을 끌어모아 머리카락을 만듭니다. 머리카락의 주성분은 케라틴이지만, 우리가 먹고 마시고 흡입한 다양한 물질들 중에서 체내에 필요 없거나 독성이 있는 물질들도 머리카락을 만드는데 쓰입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에는 우리가 먹은 것들 중 여분의 것들이 쌓이게 됩니다. 도핑 검사나 마약 검사 등을 머리카락으로 해서 금지 약물 복용 여부를 알아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머리카락은 이런 노폐물들을 저장할 뿐 아니라, 자라는 속도도 일정해서 머리카락만 조사해도 이런 약물들에 언제 노출되었는지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의 생장 주기가 제각각이어서 늘 일정한 수의 머리카락을 떨어뜨리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렇게 하면 늘 체내의 독소를 꾸준하게 제거할 수 있으니까요. 





모든 털에는 이유가 있다



체온을 유지하고, 피부 감각을 확장하고, 표피를 보호하고, 노폐물을 제거하는 역할 외에도 털은 천적으로부터 지켜주는 보호색이 되기도 하고, 개체의 건강 상태와 성적 성숙도를 직관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표지로 기능하기도 하며, 감정 상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숫사자의 갈기는 성적 성숙도에 따라 점점 더 색이 짙어져서 번식 가능성을 알리며, 고양이는 자신이 기분이 상했음을 잔뜩 털을 세워 표현합니다. 또한 고슴도치처럼 털을 무기로 이용하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물개처럼 털을 미끄러지지 않는 마찰력 패드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두가 각자 사는 환경과 사는 방식에 꼭 맞는 털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털을 줄인 것은 그것이 인류의 생활 습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얼마 남지 않은 털의 길고 짧음에 집착하는 것은 어쩌면 그리 큰 의미가 없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문헌


· 「Hair density and body mass in mammals and the evolution of human hairlessness 」 , Aaron Sandel, Brief Communication, 20 July 2013

· 「운동의 진화」 , 동아사이언스, 2019년 11월 02일자

· 「열사병」, MDSD 매뉴얼/일반인용, https://www.msdmanuals.com/ko-kr/%ED%99%88/%EB%B6%80%EC%83%81-%EB%B0%8F-%EC%A 4%91%EB%8F%85/%EC%97%B4%EC%A4%91%EC%A6%9D/%EC%97%B4%EC%82%AC%EB%B3%91

· 『헤어, 꼿꼿하고 당당한 털의 역사』, 커트 스텐 지음/하인해 옮김, MID, 2017

· 『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요제프 라이히홀프 지음/박병화 옮김, 이랑,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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