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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를 깬 과학혁명의 주역, 코페르니쿠스
조회 32 2021.02.24 신고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세상을 놀라게 할만한 커다란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말합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하늘의 모든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뒤집은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년)가 2월 19일 폴란드 토룬에서 태어났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1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톨릭교회의 신부였던 외삼촌 루카스 바첼로드에게 맡겨져 자랐습니다. 그는 대학에 입학해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했고,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합니다. 파도바대학에서 의학 수업도 들었습니다. 그 뒤 고향으로 돌아와 가톨릭교회의 신부로 살아갑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의 우주관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모형 ⓒ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1500년 11월의 어느 날, 코페르니쿠스는 천문학자들과 함께 월식을 관찰하였습니다. 그는 월식의 진행 과정을 스케치하면서 자연현상의 신비함에 흠뻑 매료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코페르니쿠스는 천문학에 빠져듭니다. 1503년 학위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가톨릭 참사회 위원으로 교회 소유의 재산을 관리하고 교회 학교의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임시 대주교로 선출돼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은 천문학에 더 기울여 있었습니다. 1513년에는 프라우엔부르크성당 옥상에 개인 천문대를 직접 세우고,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자신이 만든 관측기기를 이용해 밤하늘의 천체를 관측했습니다. 특히 그는 당시 행성 운행표가 틀리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원인을 행성의 운동에서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당대에는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지구 중심의 우주관)이 정설로 받아들여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는 매일 밤 관측을 하면 할수록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이 맞지 않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내기 어려웠습니다. 자신의 발표가 가져올 종교적인 분쟁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견해가 더 확실한 이론으로 완성될 때까지 꾸준히 연구결과를 기록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로는 행성들이 하늘에 정지해 있거나 몇 개월이 지나 역행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하늘의 행성들이 ‘천구’라는 하늘면에 고정된 채 매달린 작은 구에 다시 매달려 원운동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이론대로 행성들의 원운동을 설명하려면 모두 81개의 원이 필요했습니다. 반면 코페르니쿠스의 생각대로 태양을 우주의 중심으로 하고 지구와 다른 별들이 그 주위를 도는 것으로 가정하면 31개의 원만 그리면 충분했습니다. 또 그의 설명은 프톨레마이오스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자연현상과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천동설 ⓒ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그때까지 사람들은 태양과 달, 수성, 금성 등의 별들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 하루, 즉 24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미루어 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별 뒤의 세계는 죽은 자들이 도달하는 또 다른 하늘이 있다고 상상할 정도로 우주의 크기를 제한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와 달리 코페르니쿠스의 생각대로라면 지구는 멀리 떨어져 있는 태양 둘레를 돌아야 하고, 나머지 행성들도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기 때문에 우주는 엄청나게 커야 했습니다.





죽음 직전에야 꺼낼 수 있었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지동설 ⓒ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당시 사람들은 코페르니쿠스처럼 우주가 엄청나게 큰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주의 크기가 커질수록 인간의 존재는 티끌처럼 작아지고, 조물주가 창조한 인간의 존재 가치도 함께 작아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인간은 우주의 중심인 지구에 사는 피조물이 아니라 우주의 외딴 곳에 사는 한 생명체일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책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는 코페르니쿠스가 죽기 직전인 1543년 뉘른베르크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이 책의 원고는 10여 년 전에 완성됐지만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야 세상에 나왔습니다. 책 서문에서도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은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매우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생전에 자신의 연구성과를 주장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크게 2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중세사회를 지배하던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신학’이 학문의 중심이며, 다른 학문은 신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을 보조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반대되는 생각은 신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됐습니다. 신에 대한 도전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둘째는 ‘그리스도교의 종교분쟁’이었습니다. 당시 서유럽은 바티칸의 수장인 교황이 이끄는 로마가톨릭과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이끄는 개신교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습니다. 루터는 가톨릭교회가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에 반발해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교황도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인간에 불과하며 구원은 성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는 가톨릭교회의 사제였습니다. 당연히 루터가 속한 개신교는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하는 태양중심설이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에 위배된다”며 기존의 가톨릭교회를 공격하는 중요한 근거로 활용했습니다. 루터는 “성서에 분명히 쓰여 있듯이, 여호수아가 멈추라 하고 명한 것은 태양이지 지구는 아니라는 사실을 신부인데도 모른단 말인가?”라며 인격적 모독을 가했습니다.




지동설 주장을 위해, 목숨을 걸던 중세시대



세차 운동이 묘사된 코페르니쿠스의 저서 by Adam Jones CC-BY-SA-2.0(Wikimedia commons)

 

코페르니쿠스가 구상한 우주체계는 태양을 중심에 두고 지구에 3가지 운동을 부여했습니다. 첫째는 지구는 하루 24시간을 주기로 스스로 회전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구는 1년을 주기로 태양을 한 바퀴 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지축을 중심으로 하는 세차 운동입니다. 

 

세차 운동이란 회전 운동을 하는 물체의 회전축이 중심축의 둘레를 회전하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팽이가 돌 때 축이 회전하고 흔들리듯 지구의 자전축도 요동을 치면서 약 2만6000년마다 한 바퀴 세차운동을 합니다. 즉 1만3000년마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운 방향이 반대로 바뀝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의 자전축이 천구의 북극에 대해 2만6000년을 주기로 회전하고 있는 까닭을 지동설로 설명했습니다. 



쿠페르니쿠스가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를 펴낸 뒤에도 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태양중심설이 아닌 지구중심설을 믿었습니다. 지구중심설로는 금성의 위상 변화를 증명하기 어려웠지만,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은 금성이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에 달처럼 좌우의 모양과 크기가 바뀌는 위상 변화를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그런 예견이나 증명을 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 숨을 거두고 73년이 지난 1616년 가톨릭교회는 그의 책을 금서로 지정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설은 갈릴레이 갈릴레오(1564~1642년)의 관측과 실험을 통해 다시 주장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을 받아 죽을 고비를 겪었지만 “교회를 진리로 인정하고 가르치는 모든 것을 믿으며, 그에 반하는 태양중심설과는 결별하겠다”는 선서문을 읽고서야 풀려났습니다. 곧이어 그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우주의 중심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바꾸는 일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위험을 무릅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지금의 과학발전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참고문헌>
· Andrew Fraknoi, David Morrison, Sidney Wolff 지음, 윤홍식, 민영기, 이시우, 홍승수, 강용희, 이형목, 김용하, 권석민, 김용기 옮김, 1998, 우주로의 여행, 청범줄판사, pp31-34.
· 손영운 지음, 2007, 청소년을 위한 서양과학사, 두리미디어, pp14-23.
·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2018,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pp121-123.
· https://ko.wikipedia.org/니콜라우스_코페르니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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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정말 너무 유명한 과학적인 증명인데 당시의 상식을 깬 정말 획기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발표 자체도 죽기전에 한 것도 그런 영향이 아닌가 싶고 그래도 그런 과학의 발견과 연구는 우리가 지금 너무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기본이 되었던거 같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늘 생각하는 것이 실상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도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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