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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을 만든 여인들
조회 87 2021.05.26 신고


인류 최악의 발명품인 원자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더 많은 군인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미명하에 탄생한 비극의 산물입니다. 오펜하이머를 비롯해 페르미, 파인만, 폰 노이만 등 당대 가장 유명했던 물리학자와 화학자 그리고 수학자 등이 모여 적국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 사상 최대의 연구를 했어요. 그것이 바로 암호명 <맨해튼 프로젝트>였고, 그 산물로 원자폭탄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원자폭탄이 탄생하는 데 도움을 준 여러 명의 ’퀴리‘가 있다는 사실도 아세요?





방사능을 연구한 퀴리 부부


원자폭탄과 관련 있는 첫 번째 퀴리는 ’퀴리 부인‘으로 알려진 마리 퀴리입니다. 피에르 퀴리와 결혼 후 마리는 박사 연구 논문으로 방사능을 선택합니다. 방사능은 마리의 스승이었던 프랑스의 물리학자 베크렐이 1896년 우라늄염 광물로부터 우연히 발견하였습니다. 하지만 1년 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터라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어요. 베크렐선을 연구한 퀴리 부부는 이를 방사선이라 부르고 연구한 덕분에 유명해졌어요. 베크렐과 퀴리 부부에 의해 시작된 방사선 연구는 핵물리학이라는 학문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베크렐은 마리와 같은 뛰어난 제자를 지도한 덕분에 퀴리 부부와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됩니다.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퀴리 부부는 역청우라늄석(피치블렌드)을 가지고 방사능 연구를 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우라늄보다 역청우라늄석의 방사능이 더 강했던 겁니다. 이는 역청우라늄석에 우라늄보다 더 강한 방사능을 지닌 물질이 있다는 것을 뜻했어요. 이 물질을 찾기 위해 퀴리 부부는 8톤이나 되는 역청우라늄석을 처리하여 0.1g의 물질을 분리해 냅니다. 그 물질이 바로 라듐으로 ’빛(방사선)을 방출한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흔히 방사성 물질하면 우라늄을 떠올리겠지만 라듐은 우라늄보다 방사능이 거의 200배나 큽니다. 라듐의 발견과 연구 덕분에 마리 퀴리는 노벨 화학상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물리학과 화학에서 모두 노벨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의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을 정도로 대단한 것입니다.




자외선 아래 빛을 내는 라듐 시계 바늘
by Mauswiesel [CC BY 3.0 Wikimedia Commons]

 




인공 방사성 원소를 발견한 졸리오-퀴리 부부


두 번째 퀴리는 마리의 큰 딸인 이렌느 퀴리입니다. 이렌느는 마리 퀴리가 한창 방사능 연구를 하던 1897년에 태어났어요.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이렌느는 엄마의 뒤를 이어 라듐 연구소에서 일하는 물리학자가 되었어요. 이렌느는 프레드릭 졸리오와 결혼하여 마리 퀴리처럼 부부가 함께 연구를 했습니다. 이렌느와 프레드릭은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르는 관행을 무시하고 ’졸리오-퀴리‘로 두 사람의 성을 붙여서 사용했어요.


프레드릭과 이렌느 졸리오-퀴리
by James Lebenthal [The Commons | Flickr]


졸리오-퀴리 부부는 알파선(헬륨의 원자핵)을 붕소, 베릴륨, 알루미늄 등에 충돌시키는 실험을 했어요. 퀴리 부부가 발견한 폴로늄에서 나온 알파선을 알루미늄 막에 충돌시키는 실험이었어요. 알파선과 충돌 후에 방사선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지만 폴로늄을 치웠는데도 알루미늄에서는 한동안 방사선이 나왔어요. 알루미늄이 방사능을 지닌 다른 원소로 바뀐 겁니다. 졸리오-퀴리 부부는 최초로 새로운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해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졸리오-퀴리 부부는 물리학상을 받을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어요. 알파선을 베릴륨에 충돌시킨 실험에서 중성자를 관찰하고도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 입자가 중성자라는 것을 알아챈 것은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채드윅이었어요. 채드윅은 중성자 발견에 관한 논문으로 노벨상을 받았어요.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중성자의 효용 가치를 알고 있었어요. 중성자가 전하를 가지고 있지 않아 원자핵의 전기적 장벽을 뚫는데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1938년 페르미는 중성자를 토륨과 우라늄에 충돌시켜 새로운 초 우라늄 원소를 만든 공로로 노벨상을 받게 됩니다.
 

핵분열 반응에서 방출되는 중성자 [출처 : 한국원자력연구원]

 





핵분열을 일으킨 ’독일의 퀴리‘


세 번째 퀴리는 ’독일의 퀴리 부인‘으로 불렸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입니다. 여성 물리학자로서의 명성과 함께 마리 퀴리와 생일(11월 7일)이 같다는 것 때문에 이러한 별명을 얻었어요. 마이트너는 유명한 물리학자인 루드비히 볼츠만과 막스 플랑크의 제자였어요. 연구원 시절 마이트너는 화학자인 오토 한과 함께 피셔 교수의 연구실에 있었어요. 영화 <기생충>에서처럼 지하의 연구실에서 거의 숨어있다시피 연구를 했지만 물리학자와 화학자로 구성된 마이트너-한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연구 듀오였어요. 하지만 나치가 득세하자 유대인이었던 마이트너는 독일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독일에 남은 한은 프리츠 슈트라스만과 함께 우라늄을 분열시키는 실험에 성공합니다.


리제 마이트너와 오토 한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마이트너는 한이 알려준 실험 결과를 가지고 조카인 오토 프리쉬와 함께 핵분열을 통해 방출되는 막대한 에너지를 계산해 냈어요. 이를 통해 핵분열이 일어났을 때 줄어든 질량이 에너지로 바뀐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등장하는 질량-에너지 등가 공식(E=mc²)을 이용했던 겁니다. 우라늄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페르미의 생각처럼 핵이 더 커지는 것이 아니라 핵이 쪼개졌던 겁니다. 마이트너와 프리쉬의 논문을 본 과학자들은 이것을 이용해 무서운 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어요. 핵분열이 일어날 때 나온 여러 개의 중성자로 인해 연속적으로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나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리 퀴리와 마이트너는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자신들의 전공인 방사선을 이용해 병사들을 살리기 위해 전쟁터로 달려갔어요. 마리와 마이트너는 서로 적국이었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 각각 병사를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결국 1차 대전에서는 병사를 살리기 위해 사용했던 그들이 기술이 2차 대전에 이르러서는 죄 없는 시민들을 죽이는 원자폭탄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X레이 장비를 단 차량으로 전선을 누볐던 마리 퀴리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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